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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속 포천 한탄강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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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탄임진강지질공원 작성일16-05-04 13:48 조회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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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관(趙鎭寬, 1739~1808), 최익현(崔益鉉, 1833~1906),

허목(許穆, 1595~1682), 허전(許傳, 1797~1886),

홍경모(洪敬謨, 1774~1851), 홍석주(洪奭周, 1774~1842),

홍양호(洪良浩, 1724~1802), 홍직필(洪直弼, 1776~1852).

홍한주(洪翰周, 1798~1868)

 

이들의 문집을 중심으로 관련 기록을 정리하여 그간 모르던 지명들을 정리하여 오늘날 지명을 밝히고 그 내용에 담긴 이야기들을 정리하면 포천 한탄강 팔경의 역사성과 문화콘텐츠를 계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

삼국시대 마홀(馬忽)이니 하는 지명이나, 궁예에 대한 전설, 고석정을 찾은 공민왕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이번 심포지엄 목적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고 관련되었어도 기록이 너무도 엉성하기 때문이다.

앞의 동여도에서 전근대 시대 교통로를 언급한 바 있었지만, 보장산(寶藏山) 서쪽은 포천 한탄강 팔경 가운데 제7경인 구라이골과 제8경인 아우라지베게 용암이 있는 비경인데 접근성이 떨어져 전근대 시대 문자로 기록된 것이 적다. 이곳은 전근대 비경의 이름도 알기 어려운 데다가 다른 곳보다 유달리 기록이 부족한 곳이다. 그런데 이 보장산은 조선시대 국왕의 사냥터로 이용된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이 보장산에서 사냥한 기록이 보이고 이후 세종에게 양위한 후로는 세종과 함께 사냥하였다. 태종이 훙()한 이후에도 세종은 자주 이곳에서 사냥을 하였다. 세조, 성종도 이곳에서 사냥한 기록이 보인다. 그 몇 만 예를 들어보자.

 

 

1. 상왕과 임금이 평강(平康) 등지로 사냥하러 떠나는데, 이 날 보장산(寶藏山)에서 사냥하고, 저녁에 철원부(鐵原府)의 직탄(直灘)에서 머물렀다. (세종 2(1420) 230일 무진)

2. 보장산(寶藏山)에서 몰이를 시키고, 상왕이 친히 포천현(抱川縣) 앞들에서 돼지를 네 번이나 쏘았다. (세종 3(1421) 330일 임진)

3. 두 임금이 보장산(寶藏山) 등지에서 사냥을 구경하는데, 태상왕이 노루와 산 돼지를 각각 두 마리씩 쏘아서 잡고, 또 보음이(甫音伊)의 금장산(金藏山)에서 사냥하여, 태상왕이 노루 세 마리를 쏘아 잡았다. 저녁에 영평(永平)의 하교(下郊)에 머무르니, 최부가 술과 과일을 바쳤다.(세종 4(1422) 329일 병술)

4. 보장산(寶藏山)에서 몰이하고, 점심참에 영평현의 서평(西平)에 머물러 술자리를 벌이니, 여러 군이 입시하였다. 거가가 수여동(水餘洞)에 이르러 매를 놓아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고, 저녁에 매은장원(每隱場院) 남평(南平)에 악차를 배설하고 머물렀다. 포천(抱川) 현감 김항(金恒)이 조복을 갖추고 와서 맞아 알현하였다.(세종 7(1425) 318일 무자)

 

세 번째 기록을 보면 금장산(金藏山)은 앞에서 살핀 동여도를 참고할 때 지금은 관인면 종자산이 거의 분명하다. 그렇다면 보음이(甫音伊)라는 지명은 지금 관인면 중리 일대의 지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네 번째 기록에 보이는 매은장원(每隱場院)은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조선 전기 기록에 매장원(每場院) 매원(每院)으로도 나오는데 같은 곳을 이르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것들 역시도 기록을 정리하고 답사 등을 통해 정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실록에 담긴 기록보다도 훨씬 많은 사냥이 있었으니 세조는 수양대군 시절에 이곳에 자주 사냥을 왔었다. 세조는 1463(세조9)에 왕위에 오르기 전에 탔던 명마 12필을 그린 십이준도(十二駿圖)를 최항(崔恒, 1409~1474)에게 보이며 찬()을 쓰게 하였다. 그중 여섯 번째 준마(駿馬)는 축풍구(逐風駒)였는데 김연수(金延壽)의 가리온(加里溫 털이 희고 갈기가 검은 말)으로 영평 보장산에서 사슴 7마리를 쏘아 관통하였는데 모두 화살이 오니까지 땅에 박혔다. 이때 타던 것이다.[金延壽加里溫永平寶藏山透七鹿皆入地沒筈時御]”라는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수양대군이 보장산에서 사냥할 때 타던 갈기가 검은 백마, 즉 가리온이 축풍구였던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소암(所菴) 이병원(李秉遠, 1774~1840)영평 산수 가운데 노닐만한 곳을 쓰다[永平山水可遊者記]에는 한탄강 주상절리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대단히 길기에 모두 번역하기에는 어려우므로 그 부분만을 원문으로 인용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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