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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지질공원의 중심 지질명소 영평팔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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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탄임진강지질공원 작성일17-07-03 17:09 조회8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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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경기북부 경승지의 현황과 인식 변화

- 永平八景을 중심으로 -

최 동 원

(포천시청 학예연구사)

. 머리말

. 영평지역 경승지의 현황

. 영평팔경 유람의 양상 변화

1) 경승지 유람의 樣態

2) 영평지역 경승지의 인식 변화

. 맺음말

 

. 머리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양주, 포천, 가평, 영평은 東郊이고, 고양, 적성, 파주, 교하는 西郊인데 두교는 모두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 이곳으로 온 자는 가난하고 소진해져서 한두 세대를 내려오면 신분마저 낮아져 품관이나 평민이 되어 버린 자가 많다.”라고 했으며, 또한 한강 이북 경기지역의 산중 고을은 산이 높고 물이 차가워 심기에 알맞지 않고 들판 고을에 작물을 심기도 하고 심지 않기도 한다.”라며 현재의 경기 북부 지역을 삭막하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묘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인 복거총론 산수동교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으나 명승이라고 일컫는 산으로 영평의 백운산이 있고, 삼부연 폭포가 기이하고 웅장하다.”라고 기록하며 경기북부 지역 중 영평의 백운계와 한탄강 일원의 아름다움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경기북부 지역에는 현재까지 전하는 영평팔경이라는 걸출한 경승지가 있으며, 한탄강 일원은 경기도에서 최초로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외에도 옛 양근의 벽계구곡은 통방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북한강에 가기까지 80리를 돌아 흐르는 곳으로 한말 巨儒인 화서 이항로가 이름 붙인 곳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 옛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景勝名勝, 名所, 勝景, 勝地 등으로 표현되며 단어적으로 뛰어난 경치를 뜻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유가적 관점에서 경승은 修己治人의 대상이며 학문적 성장의 기반이 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유명한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유람을 즐겼고 이를 통해 성리학자로서의 소양을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경승은 八景九曲문화로 대두되는데 팔경문화에 대해서는 도교에서 연유한 것으로 이야기되며 일반적으로 중국 소주의 절경인 소상팔경이 들어와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구곡문화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무이산에 精舍를 짓고 구곡을 유람하며 성리학적 이상세계 구현을 본받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경승은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정신수양과 교훈, 역사문화가 결합된 장소로 인식하였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경승문화와 관련해서 遊山記와 각종 시문의 분석을 통해 팔경문학遊覽문화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안장리는 중국의 소상팔경을 통해 한국 팔경시 문화가 활성화 된 것을 밝히며, 팔경문학을 자연경관 문학과 인문경관 문학으로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상균은 조선후기 사대부들의 금강산과 관동팔경 유람에 주목하여 18세기 경승 유람 유형을 탈속과 안분의 체험’, ‘문기 함양과 구도의 체득’, ‘명현의 자취 답험’, ‘지방관의 보임지 巡遊등으로 나누며 조선시대 유람문화를 파악하였다. 이 글 대상인 경기북부 지역의 경승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다만 전통조경학 분야에서 경승지의 누정과 공간배치 등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중 창옥병에 관한 연구는 기존 창옥병의 위치를 새로 비정하면서 영평팔경 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그간의 경승과 관련된 연구는 유산기를 활용하여 조선시대 경승에 대한 개념과 유람 양상, 유람 문학에 대해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때문에 경승의 지역적 특색이 부각되지 못했으며, 유람의 시대별 樣態에 대해 조망되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경기북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팔경으로 불리며 경승 유람이 성행했지만 시간의 흐름과 개발 등으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한 영평팔경에 대해 명소별 옛 현황을 검토하고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영평팔경과 관련된 유산기와 고지도, 지리지, 고서화 등을 시기별 분석하여 팔경 유람이 성행하던 18세기를 전후한 시기 경승 유람의 변화 양상과 도성과 인접한 지역의 유람문화에 대해서도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 지도층인 사림들의 문화 향유 양상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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