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지질공원

네비게이션 메뉴

지질공원여행

 
홈아이콘 > 지질공원여행 > 지오스토리

지오스토리

지오스토리

포천 한탄강의 고고학적 고찰 - (2)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탄임진강지질공원 작성일16-05-03 11:36 조회515회 댓글0건

본문

전곡현무암의 flow unit 과 관련하여 김규한은 전곡현무암 용암층중 하부에서 3번째층은 주상절리의 횡단면이 다른 용암층에 비하여 세밀하여 직경 20~30cm 정도의 6각형을 이루고, 그 두께도 가장 두터워서 용암의 층서구별시 key flow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key flow 와 다공질의 회수로 추정한 전곡현무암의 분출매수는 철원 상촌리 지역에서 6, 전곡 고문리 지구에서 4, 문산 동파리 지역에 1매로 추정되었으며 한탄강 상류로 갈수록 분출매수와 분출량이 증가한다고 하였다. 또한 한탄강을 따라 은장산, 영도교, 재인폭포 및 선바위 지역에서 긴 형태의 기공으로부터 추정한 분류 방향은 한탄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되었음을 분명히 알려주며, 분출매수 및 긴 기공형태로 미루어 볼때 전곡현무암의 분출원은 철원 이북이고 분출량이 적었을 때는 가까운 거리에만, 분출량이 많았을 때는 비교적 먼 거리까지 용암이 이동되었던 것으로 설명하였다. (김규한외 1984) 그간의 연구에서 전곡현무암은 비교적 짧은 시기에 분출되었으며 여러 매의 unit 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겨졌지만 이 현무암류가 어떠한 층서적 관계에 놓여있는지, 그 연대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현무암에 대한 직접적인 연대측정등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지는 못하였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한탄강유역이 비교적 최근까지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DMZ 인근이라는 점 때문에 이 곳에서 지질학관련 정밀조사가 비교적 자유롭지 못했으며 현무암지형에 익숙한 지질학자들에 의한 직접 육안조사도 역시 활발히 이루어 지지 못했다는 점도 한 원인일 것이다.

그간 전곡리유적을 대상으로한 현무암 조사결과 전곡리 일대의 현무암은 50만년전에 분출한 전곡현무암과 17만년전에 분출한 차탄현무암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연대값은 전곡리유적의 최하부 유물포함층의 하한연대를 35만년으로 추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Danhara . 2002) 최근에 포천지역에서 조사된 한탄강댐 수몰지구내의 구석기유적들도 한탄강변의 용암대지상의 구석기유적의 맥락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발굴지점들에서 확인된 현무암의 절대연대 측정자료들이 확보된다면 기존에 전곡리유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현무암의 층서와 연대에 관한 연구성과들과 좋은 비교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현무암의 분출원으로 알려진 오리산(452m)680m 고지가 현재 북한지역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한탄강일대의 현무암 지질과 지형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에 한계점이 있는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4. 한탄강 용암대지 퇴적물의 기원 및 연대

한탄강유역에서 발견되는 구석기유적들은 기본적으로 현무암대지 위에 쌓여있는 점토 퇴적물내에서 석기유물들이 발견되는 유적들이다. 포천지역에서 최근에 확인되고 있는 구석기유적들 특히 한탄강댐 수몰지구내 유적들은 전곡리를 비롯한 기존의 한탄강변에서 확인된 구석기유적들과 층위적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용정산업단지내에서 조사된 구석기유적들 역시 유물포함층의 점토성 퇴적물들의 기원과 연대에 관련해서 한탄강 용암대지상의 퇴적물의 기원 및 연대와 밀접한 연관성 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곡리유적의 발견 이래 주먹도끼를 비롯한 석기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퇴적층에 대해서도 퇴적물의 형성과정, 연대등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한탄강유역 현무암대지위에 형성되어 있는 퇴적층은 석기유물을 공반하고 있기 때문에 현무암의 연대와 함께 이 퇴적층의 연대를 알 수 있게 된다면 한탄강유역 구석기유물들의 연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탄강유역 퇴적층에 대해서는 우선 그 퇴적물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가 가장 많이 진행된 전곡리 유적의 경우 발굴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수에 의해서 운반된 주변지역 기원의 물질들이 퇴적되었을 것이라는 수성기원설(이상만 1983 ; 박동원 1993), 바람에 의해 날아온 미세입자들이 쌓인것이라는 풍성기원설(오경섭과 김남신 1994), 주변지역의 산록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면붕적토 기원설(이동영 1995, 김주용과 양동윤 1999), 그리고 범람원 습지퇴적설(임동일, 1999)등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이렇듯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점토층의 형성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 개진은 이 지역의 제4기학 연구에 있어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전곡리 유적을 비롯한 한탄강 유역 구석기유적의 퇴적층 즉 유물포함층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원이 밝혀지지는 않은 채 관련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신재봉외 2004)

현무암대지 발견되는 퇴적물중에서 모래층은 분명히 유로의 작용에 의한 수성퇴적이 틀림없다. 다소간의 높이차이를 가지고 현무암의 표면 침식의 차이가 두드러진 점도 유수에 의한 수성퇴적의 증거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점토성 퇴적만이 존재하는 지점에서는 현무암반이 높이 솟아있는 지점에서 현무암반 표면이 대단이 울퉁불퉁하게 남아있는 반면에 실트나 모래가 퇴적된 지점에 있어서는 현무암반이 강물에 의해 침식되어 표면의 요철이 심하지 않다는 점이 유로에 의한 침식과 퇴적작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산폭발로 인해 형성된 현무암대지위에 고기 한탄강이 흐르면서 유수작용에 의해 현무암위에 수성퇴적물들이 쌓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수성퇴적은 고기한탄강의 유로가 현무암대지위에서 점점 낮아지면서 줄어들게 되었지만 강이 현무암대지 위에서 완전히 밑으로 떨어지는 시점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배기동외 2001)

사실 전곡리유적의 퇴적층의 경우 유적발견 당시 육안관찰에 의해 풍성토일 가능성이 잠시 언급되었을 뿐 이후 지속적으로 수성퇴적물로 여겨져 왔다. 풍성기원, 사면퇴적기원, 범람원습지 퇴적 등의 설명은 전곡리의 지형여건으로 볼 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다.(배기동 2003) 이러한 수성퇴적기원설에 대해 본격적으로 풍성퇴적기원의 가능성이 제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풍성토라는 주장의 근거는 우선 전곡리일대의 지형조건을 들고 있다. 즉 전곡리 일대는 경기편마암괴 산지사이의 분지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전곡리 용암대지는 바로 이 분지의 내부에 현무암질 용암이 덮여서 형성된 것이고 분지 주위는 고도 100-300m의 저산성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들 배후에 있는 파주 장단 김포 등의 평야지대(서쪽)으로는 50m 이하의 저산성 구릉이 철원이나 평강, 원산동쪽으로는 고도 500-900m 정도의 산지가 펼쳐진다. 따라서 전곡리 일대 용암대지가 발달한 분지는 서쪽으로는 다소 열려진 모습을 보이는데 동쪽으로는 높은 산들로 막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지는 서풍 내지 북서풍이 불 때 풍속이 약해지는 곳이 되기 때문에 이곳이 풍성토가 형성될 수 있는 입지라는 것이다. 특히 퇴적구조 자체에서 수성퇴적에서 관찰되는 층리현상이 뚜렷이 관찰되지 않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풍성기원설을 요약하면 점토층에서 입도조성의 층리가 나타나지 않고 , 기반 현무암과 부정합을 이루고 있는 점으로 보아 바람에 의해 퇴적된 풍성토(loess)라는 것이다. (오경섭과 김남신 1994)

풍성퇴적층은 풍성물질이 쌓여진 층인데 빙하말단의 사막에서 바람에 의해 운반되는 세립물질이 지표에 퇴적된 층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뢰스(loess) 혹은 황토라고 불리고 있다. 뢰스에 대한 연구는 서양에서는 이미 1830년대에 연구가 시작되어 1930년에 이미 현재의 연구결과와 별 차이가 없는 정밀한 세계 뢰스 분포도가 작성되는 등 그 역사가 깊다. 중국에서는 1970년대 들어 고지자기연구법이 황토고원의 뢰스층 연구에 접목되면서 황토고원의 뢰스-고토양 층서가 제4기의 기후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成瀨敏郞 2007)

최근에 전곡리 유적의 E55S20-IV 피트에서 집중적으로 행해진 미고결퇴적층에 대한 연구에서 행해진 입도분석, 대자율측정, 지화학분석등의 결과들을 토대로 볼 때 현무암반위의 미고결퇴적층중 상부 약 4m의 퇴적층은 뢰스-고토양 층으로 하부 3m의 퇴적물은 수성 퇴적층으로 확연히 구분된다.(신재봉외 2004, 林田 明2008). 따라서 현재까지 제기된 다양한 퇴적기원에 관한 의견들은 하부의 수성퇴적층 상부의 풍성퇴적층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사진5) 최근에 포천지역에서 조사된 구석기유적의 유물포함층인 점토층 역시 전곡리유적에서 확인된 수성과 풍성의 퇴적이라는 기본적인 형성과정은 동일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지점별로 고지형의 특성에 의해 비교고찰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향후 퇴적층의 특성 및 연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퇴적물의 기원과 관련한 지질학적인 연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는 테프라 (Tephra) 즉 광역화산재 이다.

테프라는 입자크기에 따라 화산진(<1/16mm), 화산재(1/16~2mm), 화산력(2-64mm), 그리고 화산탄(>64mm) 으로 분류되고, 기원 마그마의 성분에 따라 유문암질, 안산암질, 현무암질 테프라로 구분된다. 테프라의 구성 물질은 부석, 화산유리, 결정질과 화산 폭발이전에 존재하던 암석들이 테프라와 함께 운반 퇴적된 암편이 있다. 화산재보다 큰 화산력, 화산탄은 화산에서 멀리 이동될 수 없고, 화산재보다 크기가 작은 화산진은 현미경 관찰과 EPMA(Electron Probe Micro Analyser)분석이 어렵기 때문에 테프라 연구에서는 화산재 크기의 테프라가 주로 사용된다.(길영우 외 2006) 한탄강 유역의 점토층 에서 최초로 확인된 화산재는 약 25천 년 전에 일본 규수 지방에서 기원한 AT(Aira -Tanzawa)이다. AT 화산재는 과거 전곡리 유적관 앞의 도로 단면에서 확인되었으며 이후 한국의 구석기유적에서 여러 차례 확인되어 (이선복외 1998, 단하라 2002, 황소희 2003) 후기 플라이스토세를 지시하는 화산재로 알려져 있다. AT는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광역테프라로서 특히 제4기 지질분야와 구석기 고고학 분야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전곡리 유적에서는 1998AT의 존재가 알려진 2000년에 발굴된 E55S20-IV pit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행해진 전곡리유적의 유물포함층에 대한 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화산재의 검출을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E55S20-IV 피트의 층위단면에서 채취한 시료들을 대상으로 한 화산재분석에서 비로서 AT K-Tz이 검출되는 층위가 명확해 졌다. AT 층준은 MIS 32사이 K-Tz 층준은 MIS 5c 에 각각 대비되기 때문에 전곡리유적의 점토층의 편년에 획기적인 자료가 되는 것이다. (Danhara 2003, 檀原 徹 2008).

<span style="font-family: 돋움체,do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