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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속 포천 한탄강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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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탄임진강지질공원 작성일16-05-04 13:36 조회6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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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한탄강인가?

 

한탄강의 한탄을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는 뜻의 한탄(恨歎/恨嘆)’으로 억측하는 사람을 적지 아니 볼 수 있다. 그럼 어째서 漢灘일까? 단언컨대, 이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려고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과 같은 방대한 관찬 기록에서 漢灘을 찾은들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한탄강이라는 이름은 잘못된 것일까? 1757(영조 33)년에서 1765년 사이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양주 한탄계곡[楊州漢灘溪]”이라는 구절이 보이고, 문집에는 드물게 양주 한탄 간좌 언덕에 장사지냈다[葬于楊州漢灘坐艮之岡]”와 같이 쓰인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19세기 이전의 문서에서 漢灘은 고작 10여건에 불과하다.

한문으로 쓰인 것을 자주 본 분이라면 양주에서 연천으로 가는 길목에 대탄진(大灘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동여도大灘이 그곳이다. 이는 []여울[]나루[]’를 한자의 훈()으로 새긴 것이다. 그런데 크다는 뜻의 한을 후대에 알지 못하고 한이라는 음()으로 새기며 漢灘으로 쓰며 음새김[]+훈새김[]의 새로운 조합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은 임진강을 설명하면서

 

하나의 큰 물 -삼가 살펴보건대, 바로 대탄강(大灘江)이다.- 이 있어서 합류하는데, 이 물은 동남쪽에 있는 가평(加平)의 북쪽 산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흘러 김화성(金化城)의 남쪽 경계와 영평성(永平城)의 북쪽 경계 및 연천성(連川城) -삼가 살펴보건대, 연천성(漣川城)으로 되어야 한다.- 의 서남쪽 경계를 지나와서 합류한다. -삼가 살펴보건대, 대탄강은 그 근원이 회양부(淮陽府)의 쌍령(雙嶺)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철원의 남쪽을 지나고, 또다시 서쪽으로 흘러 연천현의 서남쪽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라고 한탄강을 대탄강이라고 일컬었으며, 성해응(成海應, 1760~1839) 역시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44 동수경(東水經)에서 대탄강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처럼 크다는 뜻의 ()’라고 뜻으로 새기기도 하고 ()’이라고 음으로 새기기도 하며 섞어서 사용하다가 20세기 초 광무(光武) 연간에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양주 대탄리가 한탄리(漢灘里)라는 지명으로 바뀌어 쓰이게 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여울은 대부분 漢灘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한탄강이 된 것이다. 그러니 한탄은 일제의 잔재도 아니며 굳이 대탄으로 되돌릴 필요도 없다. 이런 지명의 변화가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근대 시대에 이 물줄기는 대탄강이라고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대탄(大灘) : 주 북쪽 74리 지점에 있다. 물의 근원이 둘인데, 하나는 영평현 백운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강원도 철원부 체천(砌川)에서 나와서 합류한다. 연천영평을 지나 서남쪽 임진으로 들어간다.

체천(砌川) : 부의 동쪽 20리에 있다. 근원이 회양부(淮陽府) 철령에서 나온다. 또 남쪽으로 흘러가서 경기 양주(楊州) 북쪽으로 들어가 대탄(大灘)이 된다. 양쪽 언덕에 모두 섬돌 같은 석벽(石壁)이 있으므로 체천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라고 하여 한탄강 상류인 철원 일대는 체천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어디까지 체천일까? 미수 허목(許穆, 1595~1682)화적연기(禾積淵記)를 살펴보자.

체천(砌川)의 물은 청화산(靑華山)에서 발원하여 화강(花江)의 물과 합류하여 육창(陸昌 강원 철원(鐵原)의 옛 이름)을 지나 칠담(七潭)과 팔만암(八萬巖)이 되고, 영평 북쪽에 이르러 화적연이 된다. 동쪽 기슭은 긴 벼랑과 소나무 숲이며, 그 아래는 바위마당[石場]인데 모두 흰 바위이다. <span style="font-family: 돋움체,dotumche,applegothic;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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