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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속 포천 한탄강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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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탄임진강지질공원 작성일16-05-04 13:40 조회5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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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은 바위봉우리로 수중에 백 척 높이로 서 있다. 위에는 지극히 잔잔한 단 물이 고여 있는데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준다. 옆에는 용혈석(龍穴石)이 있는데 아래에 끝이 안 보이는 구멍이 있다. 시냇물은 굽이굽이 흘러 남쪽 기슭에 이르면 푸른 절벽이 화적연에 잠겨 있다. 바위 주위에는 소나무며 철쭉이 많다. 바람은 조용하고 날씨가 화창하니 물결이 잔잔하다. 바위마당은 사단(祀壇)이 되어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면 희생과 폐백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중사조(中祀條)에 실려 있다. 상류 고석정(孤石亭)까지는 15리이다. 용주공(조경(趙絅, 1586~1669)은 나와 삼부폭포를 구경하고 다음 날 화적연의 바위마당에서 노닐었다.

화적연의 물은 서쪽으로 흘러 청송곡(靑松谷)에 이르러 북쪽으로 백운계와 합류한다. 그 아래는 대탄(大灘)이며 다시 그 아래는 시냇가에 송림(松林) 절벽이 있는데, 송우(松隅)이다.

허목에 말에 따르면 화적연 상류는 V자 협곡이 마치 섬돌과 같아서 체천(砌川)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위에서 인용한 동여도에도 체천진(砌川津)이 적혀있다. 그렇다면 포천 한탄강 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은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협곡과 제2경 꼽은 샘소는 체천 유역이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대교천이라는 이름은 오늘날에야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근대 시대 하천은 나루터 이름을 따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크게는 한탄강의 줄기이지만 나루터 이름을 따라 더욱 세분하여 체천 등으로 불렀을 것이며 영평천도 한탄강으로 보기도 하였다.

 

포천 한탄 팔경의 으뜸 : 화적연

 

너무도 많은 기록을 짧은 시간에 살피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포천 한탄강 팔경은 기왕에 문헌 조사가 전무한 까닭에 문헌에 나타나는 지명을 오늘날의 팔경과 견주어 어떤 것이 어떤 이름인지 단시간에 파악하기에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기록에 많은 화적연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나머지는 함께 살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근대 기록에서 제3경으로 꼽힌 화적연은 너무도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여지도서경기도 영평현 고적유석향-영평현 북쪽 30리에 있다. 옛 이름이 유석향이고 지금 이름은 화적연이다.-[乳石鄕 在縣北三十里, 古名乳石鄕, 今名禾積淵.]”이라고 되어 있어 화적연의 옛 이름이 유석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 〈영평현에는 영평현의 속성(續姓)으로 없어진 유석향(乳石鄕)의 성()4이니, (()혹은 백(). ·(()이다.[亡乳石鄕姓四, 或作白。】]”이라고 한 것을 보면 유석향은 화적연 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이르는 것으로 고려시대 향소부곡의 향이 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석(乳石)은 고대에 이것을 복용하여 영양을 보충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나는 곳이었던 듯하다. 이때 는 석종유(石鍾乳)를 이르고 은 백석영(白石英), 자석영(紫石英), 적석(赤石) 의 석지(石脂 석고)를 이른다. 화적연 인근에 이런 것이 산출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런 광물이 산출되는 향()이 있었던 까닭에 옛 유석향이라는 말이지 화적연 자체가 유석이라는 뜻은 아닌 듯하다.

기록에서 찾으면 화적연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글에 남긴 사람은 사암 박순이다. 그 이전 기록에 화적연은 보이지 않으며 화적연 이전의 이름은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기록을 전부 찾아 대조해 나가면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1586(선조19)에 당시 64세였던 사암 박순은 영평 백운계(白雲溪)에 은거하기 위해 집을 지어 일대 11곳의 이름을 지었는데 배견와(拜鵑窩), 이양정(二養亭), 백운계(白雲溪), 청랭담(淸冷潭), 토운상(吐雲床), 산금대(散襟臺), 청학대(靑鶴臺), 백학대(白鶴臺), 명옥연(鳴玉淵), 수경(水鏡), 와준(窪尊)이 이것이다. 이는 석봉 한호가 글씨를 써서 새겼다. 사암의 행장에는 창옥병(蒼玉屛)도 그가 명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들은 백운계이지만 그의 문집에는 석룡퇴(石龍堆), 마렵연(馬鬣淵)같은 영평 명승의 이름이 대단히 많은데, 대부분 이전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아마도 지역에 전하는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전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아 어느 곳인지 비정하기 어렵다.

특히 사암이 석룡퇴라고 한 곳은 화적연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민구(李敏求, 1589~1670)석룡퇴라는 제목의 시에서 석룡퇴의 다른 이름은 화적연이다.[石龍堆 一名禾積淵]”라고 하였으며, 이시성(李時省, 1598~1668)화적연(禾積淵)에서

 

볏가리 구불구불 넘어질 듯 위태한데 禾積蜿蜒勢欲頹

옛사람 석룡퇴라 이름 지어 전했었지 古人傳作石龍堆

못가에선 속된 세상사 말을 마오 臨淵莫話塵間事

숨은 용이 있어 우레 칠까 두렵소 <span style="font-family: 돋움체,dotumche,applegothic; mso-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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